The Construction of the Film Industry and the Activities of Filmmakers in the Post-Liberation Space of Busan
Abstract
해방공간(1945년 8월 15일부터 1948년 7월 17일)은 정치권력의 공백기이자 문화 재건기였다. 영화계는 일제 강점기 영화시스템을 해체하고 새로운 영화조직과 시스템의 재건으로 나아갔다. 영화단체의 조직과 적산극장의 운영자 선정 그리고 영화 제작사 설립이 영화재건의 주요 활동이었다. 부산 영화계도 이와 같은 책무에 충실했다. 해방공간의 부산 문예단체의 활동은 정치적 영향과 연동되어 지방과 중앙의 경계 없이 여러 장르에서 활동하던 문예인들을 규합한 활동 양상을 보인다. 해방공간의 부산극장 분포는 1942년 경남 전체 22개에서 부산의 10개관이 운영되었다. 상영 프로그램은 해방공간에 제작된 영화와 해금된 작품 그리고 재소환된 친일국책영화로 혼재되었다.1945년 12월 12일 군정청 법령 제33호 「재한국인 일본인재산의 귀속에 관한 건」으로 적산극장이 미군정에 귀속되었으며 적산극장의 불하는 조선인 흥행가와 자본가를 영화 경영에 참여로 귀결되었다. 부산은 화가 양달석, 연출가 신고송, 작가 김정한, 극작가 김종명과 같은 문화예술인이 참여하는 특이점을 보여준다. 해방공간 적산처리는 인물의 역량을 토대로 한 공정한 선정을 지향하였지만 미군정의 개입으로 관선과 정실로 퇴색된다. 부산에서 예술영화사가 출범하였으며 창립작은 이었다. 예술영화사 출범은 기존 영화계의 낡은 관행과 인습을 타파하고 정치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난 예술로서 영화를 재건하려는 의지의 산물이었다.
Fields of Study & Subjects
Cinema History and Criticism
Cinema and Media Studies
South Asian Cinema and Culture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source
- HANGDO BUSAN
- Volume
- 51
- Issue
- 0
- Pages
- 59–89
- Publication date
- 31 January 2026